아파트 마당에 트럭을 세워놓고 ‘뻥’ 소리와 함께 과자를 튀겨내는 뻥튀기 장사. 그런데 늙수그레한 아저씨가 아니다. 한쪽 귀에 귀고리도 달았다. 트럭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트로트 아닌 최신가요. “맛보고 가세요”라며 손님을 모으는 이 뻥튀기 장사는 올해 스물네살의 대학생 황인택씨다.
뻥튀기를 시작한 지 14개월째. 2004년 10월 부모님이 운영하던 의류 도매공장이 문을 닫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어머니 임낙자씨가 뻥튀기 장사를 시작했다. 공장에서 뻥튀기를 받아 트럭에 싣고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며 파는 일. 즉석에서 튀겨내는 뻥튀기 기계에 간이 발전기까지 합쳐 70㎏이 넘었다. 며칠 뒤, 일에 지쳐 온 몸을 두드리는 임씨를 보고 황씨가 팔을 걷었다. “엄마, 아들이 장사 시작하면 우리나라에서 나보다 뻥튀기 잘 할 사람 없어. 믿어 보라니까.”
큰소리는 쳤지만, 정작 트럭 운전석에 앉으니 막막했다. 집이 있는 경기 성남부터 분당·평촌·송파 등지의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며 “장사 좀 하게 해 달라”고 애원했다. 어렵사리 자리를 구해도 “사세요~”란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트럭 지키느라 화장실 못 가고, 밥 못 먹는 건 예사. 오전 8시30분에 나선 집을 밤 12시 넘어서야 들어갔다.
‘앉아서는 장사 못한다’는 말을 문자 그대로 따라한 덕분일까. 몇달이 지나자 황씨의 매출은 다른 뻥튀기 장수의 3배를 웃돌았다. 종일 트럭 옆에 서서 행인들에게 “맛 좀 보세요”라며 한줌씩 건넸다. 똑같은 물건도 꿰어놓으면 보배. 물건 펼치는 데만 2시간이 걸렸다. 현미·콩·옥수수 뻥튀기에 쌀강정, 콩강정, 소라과자, 튀김과자 등 20여가지 과자를 보기 좋게 배열했다. 신세대답게 MP3 플레이어를 트럭에 연결해 최신가요와 팝송을 틀어놓고, 휴대전화 카메라로 뻥튀기 사진을 찍어 손님들에게 보여줬다.
“젊은 청년이 장사한다고 어머니들이 좋아하세요. ‘우리 아들은 집에서 TV보고 빈둥거리는데, 니가 내 아들이었으면 좋겠다’며 과일도 깎아주시고, 밥도 챙겨주시고….”
‘폼에 살고 폼에 죽는’ 20대에 뻥튀기 장사라니, 창피한 적은 없었을까. 황씨는 “큰 트럭 몰고 장사하는 게 뭐가 부끄럽냐”고 되물었다. 딱 한번, 서울 강남에서 장사하다 직장에서 퇴근하는 고등학교 동창을 마주쳤을 때만 빼면.
수입은 고스란히 부모님께 드린다. 한달에 3만원만 제 몫으로 떼어 적금을 부었다. 지난 여름방학 땐 적금 깨고 용돈 보태 한달간 동남아시아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오랜만의 ‘휴가’였다. 방학 중엔 매일, 학기 중엔 1주일에 3일씩 장사를 나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평생 뻥튀기만 할 생각은 없다.
“앞으로 1년만 더 하고 제 길을 찾아야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거든요. 올해 목표요? 장사 열심히 하고, 자격증도 따고, 미래 구상도 하고…. 아차, 한 학기 늦었지만 올 가을엔 졸업해야죠. 뻥튀기 하느라 한 학기 날리다시피했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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